1990년대 ‘오렌지족’이라는 신조어를 낳았던 압구정동은 한때는 소비문화의 중심지였고 현재는 이곳에서 젊음을 불태웠던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. 최근은 압구정 상권이 침체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곳에서 보낸 유년시절과 그 문화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간직한 박경준 소장은 복합 상업공간 프로젝트 ‘트리스트(Tryst)’를 맡아, 압구정 로데오 거리를 다시 한번 젊은이들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. 공간 기획 전문 박경준 소장의 스페이스 dNa 스튜디오는 그 이름에 걸맞게 공간과 주변 환경의 dNa를 내포한 디자인을 지향하며, 이번에도 역시 지역의 역사 와 DNA를 품고 있는 로데오 거리의 새로운 아이콘 ‘트리스트’를 창조해냈다.
클라이언트는 스포츠 스타, 공연 기획 전문가, 건설사 관계자, 다이닝 바 오너 등 각자의 색깔이 강한 네 명이었다. 타이트한 기한 안에 모든 클라이언트를 만족시키고 싶었던 박경준 소장은 지역적 특징과 복합 상업공간으로써 트리스트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3층짜리 한 건물 안에 담아내는 것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. 고민 끝에 나온 최초의 스케치는 모든 클라이언트가 단 한 번 만에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었고 그대로 현재의 트리스트로 이어졌다. 압구정 트리스트의 건물은 입지적인 측면을 고려했을 때 대로변에서 파사드가 노출되지 않아 상업공간으로써는 불리하다는 약점이 있었다. 이를 극복하기 위해 외관은 주변 상권의 네모반듯한 형태에서 벗어나 깨지고 부서진 듯한 아웃라인의 좀 더 입체적이고 독특한 구조로 탈바꿈했고, 또한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흰 컬러 도장에 골드로 포인트를 주어 고급스러운 이미지로 주변에서도 눈에 띄는 공간이 되었다.
1층은 카페/다이닝 펍으로, 오전엔 커피, 브런치를 즐기며 데이트-미팅 장소로 활용된다. 외부와 마찬가지로 흰 컬러와 골드 포인트로 실내 역시 세련된 느낌이다. 여기에 오픈 테라스 형식의 설계와 화이트 톤의 대리석 바닥, 곳곳에 트로피컬 한 식물을 배치함으로써 매장에서 브런치 등을 즐기는 젊은 고객들은 휴양지의 리조트에 온 듯한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. 한 쪽 벽면을 장식한 골드 세공과 핫핑크 네온사인이 있는 벽면 등, 셀피(Selfie)나 인증샷을 찍는 데 열정적인 젊은 세대들의 습성을 파악해 그들이 공간의 여러 스팟에서 사진을 찍기 좋도록 구석구석에 포토존을 마련해 놓았다. 천정에 원형으로 트여있는 홀 역시 골드로 마감을 했고, 이곳을 통해 2층의 편집샵을 엿볼 수 있는 구조다. 2층의 편집샵으로 향하는 계단은 새로 만들었는데, 와이어로 연결해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재미있으면서도 공간에 확장감을 준다.
이곳의 오전이 여유로운 느낌이라면 오후는 좀 더 분위기 있는 다이닝 바로 변해서 샴페인, 와인 등 다양한 주류와 음식을 즐길 수 있다. 전면부에 데크를 설치해 테라스 공간을 확장했고 밤에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가구들과 이 빛을 받은 식물들이 휴양지의 밤을 연상시킨다. 또한, 야간에는 맞은편 건물의 빈 벽면에 빔프로젝터로 뮤직비디오 등을 영사해 다이닝 바의 고객들이나 골목을 지나는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. 트리스트의 주 타겟은 젊은 층, SNS를 활발히 이용하는 세대로, 이들이 선호하는 공간에 대한 분석과 기존의 핫하다는 공간과의 차별점을 둘 수 있는 여러 방향을 모색했다.
2층의 편집샵은 트렌디한 세대의 니즈에 맞게 의류, 모자, 맨즈 액세서리를 취급하는 감각적인 공간이다. 하이 패션 브랜드나 럭셔리 브랜드의 명품보단 셀럽들이 사용하는 아이템이나 생활소품 등 대중성을 갖춘 상품들을 주로 판매하는 공간이다. 건물의 화장실은 오직 2층에만 존재하는데 이를 통해 1층의 카페/다이닝 펍은 확장성을 가져갈 수 있었고, 2층의 셀렉샵은 접근성이라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.
1-2층으로 연결된 원형 보이드(Void)는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와이어에 2층 매장의 상품을 디스플레이 하는 등, 1층에만 머무르다 떠날 수 있는 고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내 2층의 셀렉샵까지도 둘러볼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. 이처럼 박경준 소장은 상업공간이 지녀야 할 마케팅적인 요소를 프로젝트에 끊임없이 투사해 여러 클라이언트들로부터 신뢰감을 얻었다. 3층은 공연장으로 매니아성 아지트 겸 공연 대관을 위한 공간이다. 현재는 공연 외에 별도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과, 그에 맞는 인테리어에 대해 4인의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모으고 있다.
차주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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